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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쵸로] 말버릇

it217 2016. 11. 7. 21:48


“뭐 지금 이대로도 괜찮잖아?”


마츠노 오소마츠의 말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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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파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자주 하는 말에서 성격이나 이상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의 힘이란 것은 굉장하구나. 쵸로마츠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말 잘하는 사람이 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책으로, 쵸로마츠도 예약을 하고 나서 두 어 달 뒤에서야 빌릴 수 있었다. 자꾸 면접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문제점이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질문에서 당황하고 거기서 자신감 없이 대답하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그 분야를 공부해서 자신감을 키우지만, 그는 그런 분야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이런 요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눈감고 아웅이라고 하던가.


여느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강한 명령조로 적어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 쵸로마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 문구였다.


‘말버릇은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서 옮는다. 말 잘하는 사람을 옆에 두어라,’


그래. 남에게 영향을 잘 받는 그로써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았다. 쵸로마츠는 책을 덮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인 형제들을 떠올렸다. 우선 카라마츠형과 이치마츠 쥬시마츠는 논외이고, 오소마츠형과 토도마츠중에 말 잘하는 사람이라면....


“뭐? 대화를 하자고?”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토도마츠에게 쵸로마츠는 최대한 다정하게 웃었다.

거실 탁자에 앉아 평소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항상 자신을 깔보는 이 드라이 몬스터는 자타공인으로 남의 마음을 빠르게 읽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끌고 가는 화법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법정도는 배울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할 말 같은 것 없어?”

“없는데.”


토도마츠는 그의 끄덕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귀여운 척을 한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 자신보다 더 자주 그런 행동을 하곤 하지만 그런 비난은 전혀 듣지 않는 쵸로마츠가 가끔 기분 나빴다. 뭐 아마 그렇게 행동해도 전혀 귀엽지 않아서겠지만. 자신을 기분 나쁜 듯이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 화면을 보는 토도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그의 옆에 좀 더 가까이 앉았다.


“아, 뭐야 가까이 오지마. 뭔데”


토도마츠는 그 기척을 느꼈는지 질색을 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쵸로마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리가. 한 번 더 그에게 경고를 했지만 쵸로마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토도마츠는 이 쯤 되니 내가 뭔가를 잘못했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뭐 물론 사과할 생각도 없지만. 쵸로마츠를 봤지만 딱히 화가 났다거나 놀리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 형이 재밌는 건 표정에 행동의 이유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이 표정은 딱히 재밌지 않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바로 옆에 앉아서 자신을 빤히 보기만 하는 형제가 부담스러웠지만 자리를 옮기기에는 귀찮았기에 토도마츠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는 그런 그를 보다가 다시 예의 그 책을 펼쳐 읽었다. 딱히 말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나중에 다른 형제가 오면 그의 행동을 주시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의 거실에는 토도마츠와 자신뿐이었기에, 빨리 그의 입을 열어줄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쵸로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였다. 빠칭코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 아 형제들 중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둘이라니 쵸로마츠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형제를 반겼다.


“어서와.”

“어.”


오소마츠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받은 용돈을 한 방에 다 잃은 참이라 반갑게 인사하는 연인의 목소리가 좋았다. 평일이니 당연히 어디라도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집에 있었구나. 굉장히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은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도착한 시선에서 보이는 상황은 그의 기분을 붙잡고 바닥 밑으로 떨어뜨렸다.  넓은 거실 아니 넓다고는 하지는 못하지만 여섯명이 사용해도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에서 둘이 딱 붙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꽤 유난스러웠다. 그 꼴이 오소마츠는 굉장히 거슬렸다. 


“뭐하냐?”

“응? 뭐하긴. 책?”


얼굴을 왕창 찌푸린 채로 자신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옆에 섰다.


“뭐하냐고.”

“뭐가?”


쵸로마츠를 내려다보며 예의 질문을 다시 하는 오소마츠. 질문의 의도가 전혀 이해가 되지않아 멍청한 표정을 짓는 쵸로마츠와 의도는 이해했지만 상황이 재밌어 아무말도 하지않는 토도마츠. 이 셋의 묘한 기류가 흘렀다. 오소마츠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쵸로마츠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옆에 딱 붙어서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막내를 봤다. 토도마츠는 그 시선을 느꼈다. 와 뜨거워라. 조금 옆에 붙어있다고 저런 식으로 나오는거야? 청춘이네~. 그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의도한 것이 없기에 재미있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형이 온거라고~.


오소마츠는 짧게 후 하고 숨을 내뱉고는 붙어있는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갔다. 아 뭐야 자리 많은데 왜 여기앉아. 라고 하는 쵸로마츠의 말을 무시한 채 오소마츠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막내에게 말을 걸었다.


“날씨 좋더라 밖에.”

“그래? 덥다던데.”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에 토도마츠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딱히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놀 친구를 찾기도 귀찮았다. 오소마츠는 그의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가리고 씩 웃으며 강하게 말했다.


“나가 놀 생각 없냐?”

“더워서 싫어~”


토도마츠는 애교있게 웃으면서 싫다 형~ 이렇게 더운 날에 나가라구? 하며 쵸로마츠를 봤다.


"쵸로마츠형 그렇지?"


아까와는 사뭇 다른 어조와 말투에 쵸로마츠는 번뜩 깨달았다. 토도마츠가 자주 하는 화법이었다. 막내인 이상 자신의 발화에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힘이 없으니까 남의 의견을 빌려 힘을 얻어가는 법. 근데 이 화법은 면접장에서 사용할 수가 없는데. 그럼 내가 여기서 반대를 하면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할까?라는 생각까지 다달은 쵸로마츠는 반짝이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날 좋다잖아. 가끔은 나가고 좀 해."

"엥?"


이렇게 재밌는데 왜 가라는건지라는 생각을 하던 토도마츠는 예상외의 답에 멍청한 대답을 했다. 그의 대답에 힘을 실은 오소마츠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잡고 일어나 거실 문 밖으로 끌고 갔다.


"자 우리 막내 나가봐야지! 바깥 공기 많이 쐬고 올 때 형아줄 아이스크림 사와라!"

"어?...어.."


오소마츠에게 밀려 거실 밖으로 쫓겨난 그는 문을 닫기 전에 낮게 지킬건 지키라는 형제의 경고과 함께 쾅 하고 닫긴 거실 문을 멍하니 봤다. 토도마츠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킬 게 뭐야~ 형도 카라마츠형이랑 딱 붙어놀면서~ 하고 투덜대면서.


"뭐...뭐야?"


막내의 대처 화술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던 쵸로마츠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벙쪄있었다. 오소마츠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손을 탁탁 털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이제 네 차례야.


"이쁜아."

"...으...응??"


낮은 목소리로 평소에는 놀릴 때나 써먹던 애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연인이 이상했다. 누가 이쁜이냐고 태클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사뭇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쵸로마츠는 자신도 모르게 반듯하게 앉았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부르고는 한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토도마츠가 좋아?"

"음....전혀."


쵸로마츠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대답을 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 못 한 대답에 오소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씩 웃고 말았다. 귀여웠다. 눈치가 느린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가끔 상황판단이 느린 경우가 있다. 그게 귀여워서 놀리기도 부지수였다. 오소마츠의 표정의 변화를 보고 쵸로마츠는 생각했다. 아 내가 바라는 대답을 했구나. 화났을 때의 오소마츠는 예민하다. 그런 그를 만족시키는 대답을 하다니 어쩌면 나 꽤 괜찮은 화술을 가졌을 지도? 오소마츠의 입장에서는 화술도 뭣도 아닌 애교였지만. 


"왜 그렇게 딱 붙어 있었어?"

"아 그거?"


아까보다는 더 가벼운 어조로 질문하는 그에게 쵸로마츠는 긴장이 탁 풀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읽던 책을 보여주며 그의 화술울 배우고 싶었노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토도마츠한테 그런 걸 배우면 면접때도 꽤 쓸 만 할 것 같아서.."


오소마츠는 신나게  얘기하는 쵸로마츠의 얘기를 하나도 듣지 않았다. 딱히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즐겁게 말하는 얼굴이나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그것만 보고있었다. 아 이쁘다. 


"아 그리고 이 책있잖아, 내가 어떻게 빌려왔냐면..."

"근데 그 화술이란 거 쓸모있긴 한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책을 빌려온 도서관의 역사까지 말할 기세이길래 오소마츠는 그를 막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아차 싶었다. 화술의 역사라도 말해버리면 어떡하지. 쵸로마츠는 그 질문을 듣고 읽었던 책의 내용을 더듬어갔다.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어 말하는 화법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냥 얘기하면 형은 이해를 못 할테니까.


"응. 아까도 내가 형 기분 안좋을 때 말 잘해서 기분 나아졌잖아? 그런 것도 화술의 일종이지."

"뭐?"


아니 아까 질문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좋냐고? 아니 안 좋은데라는 초등학생이나 할만한 대답을 한 게 화술이라고? 오소마츠는 어이가 없었다. 저 책 뭐라고 적혀있는거야. 너무 굵어서 읽을 생각은 없지만. 오소마츠가 이해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쵸로마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형이 아까.."

"아아 이해했어, 이해했어 알겠어 그만!"


이 이상 더 얘기해 버리면 라이징이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는 쵸로마츠의 되도않는 강의를 끝내려했다. 쵸로마츠는 자신의 화술이 굉장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오소마츠는 그 빛나는 표정을 보며 웃었다. 그래 네가 좋다는데 뭐 어떠리. 그래도 조심해야할 것은 알려줘야되니까.


"근데 너 그렇게 화술 좋으면 토도마츠한테 배울 필요없지않음?"

"어?"

"그러니까 이대로도 괜찮잖아."


쵸로마츠는 정답을 들은 느낌이었다. 그의 말에 조바심을 느꼈던 빨리 형제들에게 화술을 배워서 빨리 취직을 해야지. 라는 생각들이 조금 옅어졌다. 물론 취직은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좋은 화술을 하고 있는데 굳이 다른 형제들의 것을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말대로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오소마츠의 말버릇이었다. 이대로도 괜찮잖아. 쵸로마츠는 이 말을 들으면 발전없이 멈춰있는 그가 한심했다. 하지만 가끔 조바심을 내서 일을 망쳐버리는 자신을 잘 위로해주는 말이었다. 말에는 그사람의 성격이나 이상향이 나타나있다. 오소마츠는 지금의 자신에서 만족하고 이상향 또한 지금이기에 현실에 충실한 것이겠지. 물론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을 즐기다가 무직이 된 것이지만. 


오소마츠는 그러니까 토도마츠랑 놀지말고 나랑 놀자 라는 자신의 의도를 쵸로마츠가 알아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표정을 보니 전혀 아닌 것 같지만. 유치한 질투인 것도 알고 솔직히 기분 나쁠 행동도 맞다. 뭐 그래도 어때. 딱히 쵸로마츠는 그것이 싫다고도 이상하다고도 하지않았으니까. 이대로도 괜찮잖아.


"이대로 괜찮아?"

"응 괜찮지 괜찮아."


오소마츠의 태평한 대답을 들으며 쵸로마츠는 어렵게 구한 책을 다시 봤다. 그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배워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만족해가면서 알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쵸로마츠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과 합쳐 바꿔나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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